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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생각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JTBC의 '눈이 부시게' 종방 후 김혜자쌤 인터뷰

최근에 JTBC에서 방영했던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처음에 타임슬립 드라마인줄 알고 재밌게 보던 스토리가,

후반부 알츠하이머 환자인 혜자의 공상이었다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감동적이자 기억에 오래 남을 드라마였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김혜자쌤은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으시기도 했죠? ^^

연출도,극본도, 김혜자쌤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가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꾼 건지,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꾼 건지’ 라는 혜자의 나레이션은,

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한번쯤 곱씹어 보게 되는 말이 되지 않을까요?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방송이 끝나고, 인터스텔라에 실린 김혜자 선생님에 대한 인터뷰를 보고,

누구라도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싶은 내용이라 공유 드립니다


자, 그럼 인터뷰 전문 올립니다 (출처: 인터스텔라 - 김지수)

▪️ "드라마가 나예요"라며 인터뷰를 여러번 거절하셨어요.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달았어요.

자연인 김혜자가 드라마 속 김혜자를 보는 기분이 어떠셨나요?

"맘이 많이 아파서 울었어요. 그런데 울면서도 생각을 했어요.

요즘 사람들, 많이 힘든데 내 연기가 쪼끔 이라도 사람들 위로를 해주면 좋겠다.

뾰족하고 성난 마음들, 쓰다듬어 주면 좋겠다… 그런데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렇담, 잘했어요. 많이 울면 맘이 순해진다잖아요.”

JTBC '눈이 부시게'

▪️ 슬퍼서가 아니고, 너무 좋고 아름다워서 울었어요.

"그러길 원했어요. 이 드라마에는 내 인생을 겹쳐볼 수 있겠더라고요.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저렇게 스스로를 비춰볼 테니, ‘아! 이게 정말 특별한 작품이 되겠구나' 감이 왔어요.

연출자인 김석윤 감독은 ‘청담동 살아요'도 같이 했는데, 그때 느꼈어요.

이 사람이 마음 밭이 참 깨끗하네. 좋은 밭에 싹이 떨어지니 잘 자라는 거죠."

 

▪️  김석윤 PD도 이남규 작가도 대단한 것이 ‘김혜자'라는 한 사람의 일생을 참 오래 관찰하고 연구했다 싶었어요.

그걸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와 섞어서 알맞은 타이밍에 선물처럼 안겨줬어요.

"나는요, 그 사람들 믿었어요. 처음엔 주변 사람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김혜자가 왜 저런 진부한 ‘타임슬립’ 드라마를 하나… 뻔한 환타지물에 왜 나와?’ 그때 속으로 생각했어.

‘그래, 오해할테면 해라.’ 이제야 다들 고개를 끄덕여(웃음). 이젠 슬픈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때가 된 거예요.

우는 건 첨부터 노상 울고, 심각한 건 내내 힘주고… 그건 옛날 연기잖아.

내가 배운 건 힘을 뺄 때 정말 좋은 게 나온다는 거예요."

▪️ 사실 힘을 빼는 게 더 어렵지요.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운동할 때 우리 코치가 그래.

"선생님, 힘 빼세요. 엉뚱한 데 힘주지 마세요!"

연기도 똑같아요. 필요없는 데 힘쓰면 안되거든(웃음)."

▪️ 힘을 빼고 한 이야기 중에 어떤 게 기억에 남으세요?

"등가교환 이야기 할 때요. 영수(손호준 분)가 자고 있을 때 채팅방에 들어온 젊은이들하고 댓글로 얘기하잖아요.

그땐 정색하고 말하면 안돼요.

‘(한달음에)니네들 그렇게 살다가 나처럼 된다~' 그 말을 장난처럼 툭 던지는 거예요.

무방비상태에 있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졸고 있다가 잠결에 들을 지도 모르잖아.

난 그 장면 대사를 한 100번쯤 연습했어요."

▪️ 세상에 공짜는 없군요.

"거저 얻어지는 건 없어요. 내 귀중한 걸 희생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어요. 그게 등가의 법칙이에요.

운 좋은 사람? 운 좋았다 해도 노력 안 하면 사라져요.

나는 이해력도 부족한 사람이라 열심히 안 하면 할 수가 없었어요. 오죽하면 꿈에서도 대본이 나왔어요."

▪️ 나이 들면 윤곽이 흐릿해진다지만, 연기할 땐 좋은 점이 더 많지요?

"나이 먹으면 인중도 길어지고 콧구멍도 커져요(웃음). 나이 먹으면 언제든 드러날 건 드러나게 돼 있어요.

숨기는 게 없으니 훨씬 자유스럽죠. 이번엔 촬영할 때 카메라가 얼굴을 밑에서 잡으니, 콧구멍이 무슨 터널처럼 크게 나왔어요. 처음엔 짜증나더라고(웃음). ‘너무해. 감춰둔 걸 다 폭로시키다니'. 그런데 또 그게 무슨 대순가 싶어. 시청자들도 댓글로 ‘콧구멍 크다'고 타박하더니, 이젠 또 서로 ‘너도 나이 먹으면 살이 얇아져 콧구멍 커진다' 이러면서 야단을 쳐요. 그걸 보면서 나는 또 이 사람들이 참 다정도 해라…"

▪️ ‘젊은 혜자' 한지민을 멀리서 바라보는 눈빛에 잊히지 않아요.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순간, 저도 20대 시절의 저를 불러서 지그시 쳐다보았습니다.

"애틋했어요. 슬픈 것 가여운 것을 넘어서 참, 애틋했어요."

JTBC '눈이 부시게'

▪️ 이제사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만 늙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 줄 알 것 같습니다.

"있잖아요, 정말로 나이 먹으면 어떤 일이 어제 일처럼 확 줌인이 돼요.

어떨 땐 지금, 이 순간도 아스라하게 줌아웃이 돼.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대사를 할 때

‘아, 작가도 이걸 느꼈구나’ 했어요. 그게 나였어요.

간혹 ‘진짜 배역을 사는 거 같아'라는 댓글을 볼 때마다 혼자 중얼거렸어요.

‘'같아'가 아니라 그게 나예요.’"

▪️ 어쩌면 그 힘으로 선생은 드라마에서도 자기 인생에서도 주인공으로 살아온 게 아닌지요?

"그것도 얼마나 감사해요. 날개는 누가 달아 주지 않아요. 내 살을 뚫고 나오는 거죠.

등가교환과 비슷한 말이야. 깃털이 살을 뚫을 때 얼마나 아프겠어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가족들이 배려해줘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꿈꾸듯이 살아온 인생이었다.

큰 아들이 4살 때 연기를 재개했으니 오랫동안 ‘국민 엄마’로 불렸지만,

그 모든 게 허물을 덮어준 자식과 남편의 공이었노라고.

▪️ 엄마 김혜자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같이 있다가도 "엄마 공부해야 해. 대본 봐야 돼"하고는 방에 들어갔어요.

우리 아들이 그래. "엄마가 방에 들어가서 공부할 땐 곁에 가면 안 될 것 같았어. 무슨 커튼이 드리워진 것처럼."

난 그 말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러니 난 연기를 잘 하지 않으면 안 돼요."

▪️ 이젠 ‘혜자’라는 이름이 가족처럼 친근하게 느껴져요.

"나도 ‘혜자'를 좋아해요. 내 이름이니까. 은혜 혜(惠)자를 써요.

우리 언니 둘은 자(子)자 돌림이 아닌데, 내 이름만 왜 그렇게 지으셨나 몰라(웃음).

김석윤 감독이 드라마 ‘청담동 살아요' 할 때도 주인공을 ‘혜자’로 쓰더니, 이번 드라마에도 또 ‘혜자'야(웃음)."

▪️ 연출자와 작가들에겐 ‘김혜자’라는 존재 자체가 탐구 대상인듯 해요.

익숙했던 ‘혜자’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수록, 불가사의한 생의 풍경이 펼쳐지니까. 계속 호기심이 생기는 거죠.

준호 감독도 영화 ‘마더'에서 주인공 이름을 ‘혜자’로 썼잖아요.

‘국민 엄마'를 비틀었더니 짐승처럼 스산한 모성의 여자가 나왔어요. 정말 신기하더군요. 그

런데 7살 때 우연히 출연한 연극에서도 ‘혜자’였다죠?

"그랬어요. 개에 물려 공수병으로 죽는 아이였는데,

앓다가 죽어가니까 관객들이 "혜자를 죽이지 말라"고 아우성을 쳤어요(웃음).

그때 우리 언니가 ‘이 아이는 배우가 될 싹'이라고 했대요."

▪️ 7살 혜자부터 70대의 혜자까지… 여러 역할로 우리 곁에 있었는데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어요(웃음).

스스로도 자신이 쌓아 올린 이미지를 해체하고 역전시키는 재미를 느끼시나 봅니다.

"감사해요. 나는 가만히 있는데 좋은 사람들이 때가 되면 불러주는 거죠. 내가 41년생, 한국 나이로 78살이에요.

옛날 같으면 굉장히 오래 산 거죠. ‘왜 이렇게 오래 사나’ 싶을 때도 많아요.

생각해보면 ‘눈이 부시게’의 ‘혜자' 역할도 이 나이니까 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김석윤 씨가 기다렸을 거예요. 더 나이 먹으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딱 이 나이가 될 때까지(웃음)."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

 

▪️ 저는 창작자들이 선생의 이전 작품을 레퍼런스로 삼아, 영감을 발전시킨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의 희자 역할도 알츠하이머였어요.

"나는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안 잊히는 장면이 있어요.

상대역인 주현 씨한테 "나 잠이 안 와" 그랬더니 자장가로 ‘서머타임'을 불러주잖아.

(배시시 웃으며) 저, 그때 너무 좋았어요. 치매가 깊어도 사랑이 구원하는구나. 사랑만이 답인 거죠.

요양원에서 주현 씨가 옆에서 퍼즐 조각 맞춰줄 때도 그 여자는 산만하게 딴 데 보면서 다른 사람 간섭을 해요.

치매에 걸리면 그냥 아기인 거예요."

▪️ 치매 노인의 머릿속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궁금하다셨는데 이번 작품이 그 답이 됐겠습니다.

"그랬죠. 나 옛날부터 몹시 궁금했거든. 치매 걸리면 뇌가 쪼그라든다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건가.

달나라에도 갈만큼 기술이 좋아졌다는데 왜 그걸 못푸나?

예전에 파키스탄 지진현장에 가면 볼품없는 천막은 가만 있는데 튼튼하게 지은 2~3층 건물들이 뒤집어져 있어요.

그거 보면 땅 속에 커다란 손이 막 헤집고 다닌 것 같아. 치매가 그런 걸까...

하버드대 교수 하다 치매 걸린 여자도 어느날 대학 광장에서 황망해 해요.

어디로 가야할 지 생각이 안나는거에요."

▪️ 살아보니 어떠셨어요?

"나는 그냥 오롯이 그 시간을 살았어요. ‘혜자’라는 어떤 여자가 있었어요. 서민이지만 다정했던 여자지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아이 하나 낳고 알콩달콩 살았는데 비극의 현대사 속에서 남편을 잃었어요.

살면서 그 여자는 "돈이 제일 무서웠어요." 열심히 살다 좀 살만하니까 치매에 걸린 거죠.

참 다행인 건 일평생 그 여자는 마음 밭이 좋았어요."

JTBC '눈이 부시게'

▪️ 박완서 선생과 인생도 작품도 많이 닮으셨어요.

"나는요, 박완서 선생 글을 읽으면 행주 냄새가 났어요.

그분이 제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 추천사를 써주셨는데,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나를 보셨어요.

읽어줄게요(웃음).

‘김혜자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나라도 저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에게

내가, 아닌 모든 여편네들이 씐 것처럼 오싹해질 때가 있다.

저런 연기의 깊이는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혹시 드라마 밖에서의 그녀는 힘이 다 빠져 무기력하게 지내는 건 아닐까, 궁금해하곤 했다…’

내가 놀라서 선생님께 "이런 나를 어떻게 아셨어요?" 그랬더니 "나도 그래요" 하며 웃으시더라고.

내가 힘을 쓸 때는 정말 연기할 때랑 아프리카에서 아이들 안아줄 때 밖에는 없어요.

다른 건 다 모르고 서툴러요."

불쑥 처음 박완서 선생 댁에 찾아갔던 날을 떠올렸다. 한겨울에 마당에 노란 꽃이 피었더라고.

"김혜자 씨, 이게 복수초야. 눈을 뚫고 나오는 아이지" 하셔서 난, "그래도 이름이 복수는 나쁘다~" 그랬어요(웃음)."

▪️ 선생 댁 마당에도 지금 봄꽃이 한창이지요?

"제비꽃이 앉아서 퍼져 나왔어요. 담 앞엔 영춘화가 오래 전 부터 피었죠.

살구나무 벚나무엔 새순이 오동통해요. 만지면 터뜨릴 것처럼.

나는요, 서교동 연희동에서만 50년을 살았어요.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아요.

내 방이 있는 3층에서 보면 창밖으로 사계절이 다 보여요.

외출도 싫어해서 5살 3살 강아지 보리랑 수수랑 눈 맞추고 놀며 얘기해요.

여기서 나가기 싫어서 누가 강남에서 만나자면, 그 사람 막 미워질려고 해(웃음)."

▪️ 강남 나가기도 힘겨워하시는 분이 어떻게 매번 아프리카를 가세요?

"그러니 감사하지요. 30년 전엔 비행기 직항도 없어서 이 나라 저 나라 거치다 보니, 이젠 안 가본 곳이 없어요.

남들은 경비행기 타면 심장이 툭툭 떨어져서 구토를 하는데, 나는 안그래요.

몸은 약해도 하나님이 튼튼한 오장육부를 주셨어.

비행기가 흔들릴 땐 앞에 계기판을 보고 ‘저렇게 요동을 치네' 그래요.

비행사 등 보면서 ‘아! 저 사람, 참 외롭겠구나' 해요. 그럼 어느새 다 와있더라고."

▪️선생은 평생 외로울 사이가 없으셨겠어요? 가정과 일터에서 ‘예쁨과 귀함'을 다 받고 사셨으니.

"다들 안 예쁘고 안 귀한 사람 있나요?

그런데 난 남편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감사하게도 너무 좋은 사람이었어.

11살 차이가 났는데, 살면서 나한테 화를 낸 적이 거의 없어요.

매번 ‘사람, 참'하고 웃고 말았죠. 저세상 떠난 지 20년이 넘었는데, 지금도 그이가 생생하게 고마워요."

이번 드라마를 그를 한없는 사랑으로 감싸준 남편에게 주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미국에 있는 딸한테도 전화해서 그랬어요.

‘눈이 부시게'가 그동안 내 허물을 덮어준 우리 가족에게 내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줘서 기쁘다고."

 

▪️ 가족들도 보통 명사인 ‘국민 엄마’ 아니라 ‘내 엄마 김혜자'를 당겨보듯 어여삐 구슬피 보았겠지요.

그런데 대학교 2학년 때 학교도 탤런트도 다 그만두고 결혼해서 아이 키운 건 후회 안 하세요?

"그때, 나 정말 행복했어요. 아기가 너무 신기했거든.

우리 아들은 쌍꺼풀도 없고 눈이 보시시하게 부어있었어요. 예뻤지.

그치만 4살이 되니 젖 먹고 쓱 나가서 동네 애들하고 놀다 오더라고. 배신감이 들었어요(웃음).

그래서 연극을 시작했고, 다시 드라마도 했죠."

▪️ 전원일기’에선 얼마나 멀리 오셨어요?

"그거는 사람의 도리를 알려주는 드라마였어요. 농촌은 무대였을 뿐이죠.

김정수 작가의 인생 드라마였는데, 그이가 10년을 쓰고 도망을 갔어(웃음).

그 뒤로 김정수 씨가 쓴 ‘겨울 안개' ‘엄마의 바다'에도 출연했는데,

사람이 또 양반이라 지랄발광하는 그런 건 못써요.

런 건 김수현 씨가 잘했죠.

‘사랑이 뭐길래'에서도 배배꼬여 남 약올리는 대사를 할 땐,

그 신랄함에 인중에 땀이 수북히 고일 정도였어요(웃음).

‘모래성'도 ‘엄마가 뿔났다'도 좋았죠.

김수현 씨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데,

그 분이 긴 드라마 말고 12부작 정도의 미니 시리즈를 써주면 좋겠어요."

▪️ 출연작이 많지는 않지만 백상예술대상도 최다수상했고

영화 ‘마더'로는 LA비평가협회에서 주는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11개나 상을 받으셨습니다.

개인적으론 83년 마닐라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받은 영화 ‘만추'를 못 본게 아쉬워요.

스틸컷만 봐도 근사하더군요.

"(미소지으며)우리 아들이 어느날 ‘만추'포스터를 찾아서 나한테 보여줬어요.

"엄마 나이 마흔일 때 같아"하면서요. 신기하고 고맙죠."

▪️ 못 다 이룬 꿈이 있으세요?

"꿈? 난 그런 거 몰랐어요. 꿈이 뭔지 모르고 살았어. 누군가 내가 할 걸 보여주면 그걸 하며 살았죠.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은 했어요. 영화 ‘길'의 젤소미나 같은 역할은 해보고 싶다고.

‘내 사랑'의 몸이 아픈 화가 모드 역할도 좋았어요.

그런데 그런 작품을 보면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든 허물을 사랑이 다 덮어요."

이어 기습하듯 말했다. 어쩌면 이번 드라마가 김혜자의 마지막 챕터가 될 거라고.

"100세 시대지만 임무가 끝나면 하나님이 데려간다고 해요.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마지막 챕터가 아닌가 해.

잘 여미게 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 마지막일 지도 모르는 챕터에서 선생이 찾은 건 무엇인가요?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이죠.

우리는 이제까지 치매라고 하면 며느리가 밥 안 줬다고 악을 쓰는 노인만 봤잖아요.

살아보니 제일 아름다웠던 순간도 가슴 아팠던 순간도 다 소중하게 모여서 기억이 돼요.

뇌가 쪼그라들어도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으로 살아요."

▪️ 25살 혜자를 살아서 행복하셨어요?

"행복했죠.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던 시간도 같이 보던 노을도… 정말 눈부시게 행복했어요."

JTBC '눈이 부시게'

▪️ 마지막으로 들려주세요.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시간은요, 정말 덧없이 확 가버려요. 어머나, 하고 놀라면 까무룩 한세월이야.

안타까운 건 그걸 나이 들어야 알죠. 똑똑하고 예민한 청년들은 젊어서 그걸 알아요. 일찍 철이 들더군.

그런데 또 당장 반짝이는 성취만아름다운 건 아니에요. 오로라는 우주의 에러인데 아름답잖아요.

에러도 빛이 날 수 있어요. (미소지으며)하지만 늙어서까지 에러는 곤란해요. 다시 살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 지금, 눈 앞에 주어진 시간을 잘 붙들어요. 살아보니 시간만큼 공평한 게 없어요."

 


엔딩으로 극중 혜자의 나레이션(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이기도 했던) 올려드리면서,

이만 포스팅 마칠께요~~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콤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많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